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투명 필통' 전성시대, 왜 그렇게 유행했을까?

by 행복한달조 2025. 5. 25.

“안에 뭐 들었는지 다 보이던 그 시절 필통의 세계”

한때 한국 초·중학생들의 필통은 ‘투명’이 대세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 학교 책상 위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 필통이 유행처럼 자리 잡았죠.
단지 필통 하나일 뿐인데, 그 속엔 당시 학생 문화, 유행, 개성, 심지어 계층까지 담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투명’이었을까요? 오늘은 투명 필통 유행의 배경, 당시 필통 문화, 그리고 지금과의 차이점까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투명 필통' 전성시대, 왜 그렇게 유행했을까?
투명 필통

1. 투명 필통의 시작, 어디서 왔을까?

1990년대 중후반, 문구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학생 대상의 제품은 단순 실용성을 넘어 ‘개성’과 ‘디자인’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등장한 것이 비닐이나 PVC 재질로 만든 투명 필통입니다.

초기엔 단순히 불투명 필통보다 싸고 가볍다는 장점으로 등장했지만, 어느새 그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창”이 되었습니다.

1) 투명 필통이란?

  • 소재: 주로 PVC, 젤리 비닐
  • 특징: 내용물이 그대로 보임
  • 가격: 당시에 1,000~2,000원대
  • 유행 시기: 약 1997년 ~ 2005년 사이
  • 브랜드: 모닝글로리, 아트박스, 디자인채널 등에서 다양하게 출시

이 시기의 학생들은 단지 공부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 첫 세대였습니다.
그 중심에 ‘투명 필통’이라는 작은 무대가 있었던 것이죠.

 

2. 투명 필통 속에 담긴 '나만의 우주'

투명 필통이 유행했던 진짜 이유는 ‘속이 보여서’였습니다.
그 속엔 단순한 필기구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취향과 성향, 자존심까지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1) 인기 있는 ‘아이템’이 담긴 필통이 곧 위신

향기 지우개, 캐릭터 자, 다색 펜 등은 투명 필통 안에 들어 있을 때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누가 봐도 “와, 쟤 거 되게 많고 예쁘다!” 하고 감탄할만한 아이템을 구비해 놓는 것이 ‘일종의 자존심’이었죠.

2) 계층을 나누는 도구가 되기도

비싼 브랜드 펜(하이테크, 벚꽃 젤리펜 등)을 몇 개나 넣었는지로 은근한 비교가 이루어졌고,

친구 필통을 슬쩍 보며 따라 사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3) 꾸미기의 시작, DIY의 출발점

필통 안에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거나, 종이로 만든 작은 미니 캐릭터 카드를 넣어 꾸미기도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이름을 타이핑해서 인쇄한 후 예쁘게 잘라 넣어놓는 등 ‘나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장이 되기도 했죠.

이 모든 것들이 투명 필통 하나에 담겼기에, 학생들은 마치 스마트폰 케이스를 꾸미듯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3. 교사들의 반응은? 실용 vs 규제

학생들이 열광했던 것과 달리, 일부 교사나 학교에서는 투명 필통에 대해 규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학교 이상의 경우 수업 집중력 저하, 필통 속 쪽지 전달, 장난감 보관 등을 이유로 금지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안에 뭐가 있는지 훤히 보여서 감점요인이다."

"수업시간에 펜을 구경하고 앉아 있냐?"

이런 식의 꾸중을 들은 기억이 있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반면, 일부 교사는 “검열이 쉬워서 좋다”는 반응도 보였습니다.
금지 물품 소지가 바로 보이기 때문에 감시가 용이하다는 이유죠.
이처럼 투명 필통은 학생에게는 ‘자기표현의 수단’이었지만, 교사에게는 ‘규율과 통제의 수단’으로도 해석되었습니다.

 

4. 지금은 왜 사라졌을까? 시대의 변화와 디지털 세대

그렇다면 왜 지금은 투명 필통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보여주기' 방식의 변화

요즘 학생들은 SNS, 스마트폰 배경화면, 텀블러, 키링 등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필통은 단지 실용품일 뿐, 더 이상 ‘나를 설명해 주는 공간’이 아니죠.

2) 실용성과 디자인 변화

무게가 가볍고 튼튼한 하드형 필통, 심플한 파우치형 필통이 대세가 되었고,
투명 재질은 쉽게 찢어지고 변색되며 오래 못 쓰는 단점이 부각되었습니다.

3) 규제와 안전 문제

플라스틱 냄새, 화학물질 포함 여부 등으로 인해 어린이 제품 안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일부 투명 필통은 유통에서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5. 마치며: 작은 투명 필통, 그 안의 시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교실 책상 위의 투명 필통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엔 우리들의 취향, 허세, 유행, 친구 관계, 그리고 성장의 흔적이 담겨 있었죠.
지금도 문구점을 지나다가 우연히 비닐 투명 필통을 발견하면, 그 시절 친구의 필통을 몰래 엿보던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 투명 필통을 사용했던 여러분의 필통 속엔 어떤 아이템이 들어 있었나요?
그 속에 담긴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속 ‘교실’로 다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