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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펫 문화’가 있었다? 왕실과 양반들의 반려동물 이야기

by 행복한달조 2025. 4. 8.

요즘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한 존재가 되었죠. 강아지, 고양이는 물론이고, 앵무새나 고슴도치 같은 이색 동물까지 사랑받고 있는데요. 그런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반려동물 문화를 즐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조선왕조실록, 의궤, 고문서, 고서화 등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많은 기록에서 동물들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왕실과 양반가에서 어떻게 반려동물을 길렀는지, 어떤 의미로 여겼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조선시대에도 ‘펫 문화’가 있었다? 왕실과 양반들의 반려동물 이야기

 

1. 궁궐 속 ‘개냥이’들 – 왕실의 반려동물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키운 기록이 제법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영조의 손자였던 정조가 키우던 강아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죠. 정조는 학문에 열중하고 백성을 아끼는 성군으로 알려졌지만, 반려견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인물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반려동물을 단순히 기르는 존재로 여기지 않고, 이름도 붙이고, 사망 시 장례까지 치러주는 문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조는 자신의 반려견이 죽었을 때 매우 슬퍼했고, 이를 신하에게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고 해요. 이런 기록은 ‘일성록’ 같은 왕실 일기나 실록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양이 역시 궁궐 안에서 흔하게 보였던 동물입니다. 고양이는 쥐를 잡는 실용적인 동물이었지만, 동시에 애완 목적도 있었어요. 어떤 경우에는 고양이에게도 이름을 붙이고, 궁녀들이 같이 놀아주는 모습도 기록돼 있습니다.

 

2. 양반가의 ‘애완문화’ – 자식처럼 기른다?

왕실만큼은 아니지만, 양반가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례가 많이 보입니다. 특히 중인 계층 이상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소형견이나 고양이를 기르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인 박제가는 자신의 글에 “개와 함께 걷고, 놀고, 밥을 함께 먹는 기쁨”을 표현한 구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동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동반자이자 감정적 위안의 대상으로서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몽유도원도> 같은 그림이나 풍속화 속에서도 강아지를 안고 있는 양반 아이나, 고양이와 장난치는 모습이 종종 등장하는데요. 이러한 장면은 당시 사회에서도 반려동물이 일상 속 일부였음을 암시합니다.

당시에는 ‘애완동물’이라는 단어 대신 ‘집개(집에서 기르는 개)’, ‘오동이’(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부르던 말) 같은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 또한 현재의 펫 문화와 다르지 않은 정서입니다.

 

3. 동물도 예를 갖춘다? – 반려동물을 향한 예와 장례

조선시대는 예를 중시하던 유교 국가였기 때문에,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도 일정한 '격식'과 '예절' 속에서 표현되었어요.

특히 양반이나 왕실에서 키우던 동물이 죽었을 경우, 그냥 묻는 것이 아니라 작은 비석을 세워주거나, 나무로 만든 표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이름이 붙은 반려동물에 한정되었고, 사람처럼 “묘”를 만들어 주는 경우도 일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왕의 반려견이 죽으면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조용한 장소에 묻은 뒤 기념물을 세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반려동물을 단순한 짐승이 아닌, '정서적 교감의 대상'으로 본 셈이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동물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哀悼文)을 남기기도 했고, 가족처럼 여겼던 흔적이 지금까지도 문서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4. 조선시대 ‘애완동물’은 어떤 품종이었을까?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키운 동물들은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요?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푸들, 포메라니안 같은 외래 품종은 없었지만, 작고 온순한 토종 소형견, 누렁이, 똥개(잡종견) 등이 주로 기호에 따라 선택됐습니다.

고양이의 경우에도 코리안 숏헤어와 유사한 형태의 단모종이 많았고, 털이 하얗거나 검은 고양이는 특별히 길조 또는 흉조로 여겨져 색상에 따라 기호가 갈리기도 했죠.

또한 부유한 집안에서는 앵무새, 잉꼬, 비둘기, 심지어 사슴이나 노루 같은 야생동물도 집에서 기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건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기록에 의하면 왕자나 고관대작 집에서 사슴을 ‘관상용 동물’로 기른 기록도 남아 있어요.

 

5. 마치며: ‘펫’은 현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고, 일상에 소소한 행복을 주는 존재로서 동물을 길렀습니다.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 감정을 주고받는 대상으로서의 반려동물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죠.

지금 우리가 반려동물과 보내는 시간도 과거 선조들이 그랬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전엔 더 많은 정성과 예를 갖췄던 점도 인상적이죠.

'펫은 트렌드가 아닌 인간의 본능적인 동반자’라는 말처럼,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마음이 오늘날의 펫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