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햇살이 따사롭던 시절, 삐걱거리는 나무 책상과 검은색 가방 속에는 늘 반짝이는 ‘양은 도시락’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뛰놀다 보면 도시락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에 절로 침이 돌고, 뚜껑을 열 때의 설렘은 지금의 ‘랜선 맛집 탐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그러나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는 일상의 일부였던 양은 도시락 이야기를 꺼내본다.
1. 반짝반짝했던 양은 도시락의 추억
양은 도시락은 흔히 ‘알루미늄 도시락’으로 알려진, 얇은 금속 재질의 도시락통이다. 뚜껑을 닫을 때 특유의 ‘찰칵’ 소리가 났고, 밥과 반찬을 정갈히 담으면 반사가 될 만큼 빛났다. 부모님이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은 투박한 외형과 달리 따뜻하고 소박한 사랑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도시락의 외관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했지만, 양은 도시락 특유의 반짝임은 어릴 적 나에게 일종의 ‘브랜드’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더 반짝이는 도시락을 가져왔는지 은근히 비교했던 기억도 있다. 설거지를 할 때, 철수세미로 문질러 닦으면 다시 새것처럼 빛이 나던 그 모습도 지금은 그리운 풍경이 되었다.
2. 난로 위에 올려놓고 먹던 그 맛
겨울철 초등학교 교실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석유난로였다. 수업이 끝난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반장 혹은 급식당번이 교실 뒤편 난로 위에 하나둘씩 도시락을 올렸다. 뚜껑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밥과 반찬이 뜨끈하게 데워졌다. 간혹 난로 위에 너무 오래 올려두면 밥이 눌어붙어 ‘누룽지’가 되기도 했는데, 이게 오히려 별미였다.
김치볶음, 멸치볶음, 계란말이, 그리고 햄 한 조각. 간소한 구성이어도 난로에서 뜨끈하게 데워진 도시락은 세상 그 무엇보다 맛있는 ‘한 끼’였다. 특히 양은 도시락은 금속 재질 덕분에 열이 잘 전달되어 데우기 좋았지만, 반대로 너무 뜨거워져서 뚜껑을 열 때 손수건이나 옷소매로 조심히 열어야 했다.
3. 운동장 한켠에서 펼쳐진 도시락 소풍
지금은 교실에서 단체 급식을 먹지만, 과거에는 운동장 한편에서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는 풍경이 일상이었다. 매연도 없고 차도 별로 없던 그 시절,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는 흙먼지를 날리며 뛰노는 아이들과 그 틈에서 도시락을 펼치는 풍경이 펼쳐졌다.
비닐 깔고 다 같이 둘러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면, 여기저기서 “한입만~” 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김치를 나눠주고, 반찬을 바꿔먹으며 소박한 우정을 나누었다. 가끔은 밥 위에 얹어진 ‘계란프라이’ 한 장이 가장 인기 있는 메뉴였고, 그 한 조각을 친구와 나눠 먹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던 시절이었다.
4. 사라졌지만 마음 속에 남은 풍경
1990년대 후반부터 위생 문제와 전자파 차단 등의 이유로 스테인리스 도시락이나 플라스틱 밀폐용기가 등장하면서 양은 도시락은 점점 사라졌다. 더 이상 학교에서 도시락을 싸 오는 문화도 점차 줄어들고, 급식이 일반화되면서 우리의 기억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양은 도시락은 복고풍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 시절을 대표하는 소품으로 자주 등장한다. ‘응답하라’ 시리즈나, 영화 ‘완득이’ 같은 작품 속에서 등장할 때면 많은 이들의 아련한 감성을 자극한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양은 도시락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친구들과의 소소한 추억, 그리고 운동장의 흙먼지 속에서 함께 먹던 따뜻한 밥 한 끼는 여전히 우리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5. 마무리하며
누군가에게는 단지 ‘알루미늄 도시락’일지 몰라도, 그 시절 양은 도시락은 단순한 식사 도구 이상의 존재였다. 엄마의 손맛, 친구들과의 유대, 그리고 교실 난로 위의 정겨운 풍경까지, 우리 세대의 소중한 기억 저장소였다. 언젠가 다시 양은 도시락을 꺼내어 그 시절처럼 밥을 데워 먹는다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