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미술 시간이 다가오면 책가방 속에서 제일 먼저 찾았던 건 크레파스도, 물감도 아닌 ‘색종이함’이었다. 한 칸 한 칸에 가지런히 접힌 오색찬란한 종이들이 담겨 있던 그 상자 하나면, 한 시간쯤은 훌쩍 지나가버리곤 했다.
이제는 잊혔을지 모를 그 시절의 ‘색종이함’ 속 추억을 다시 꺼내본다.
1. 한 장의 종이로 시작된 상상의 세계
색종이는 그저 네모난 종이 한 장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의 손을 거치면 기적처럼 다양한 형태로 변신했다. 종이접기를 처음 배운 날, 선생님이 보여주신 종이학 한 마리는 마치 마법 같았다.
정확한 선을 따라 접다 보면 어느새 날개를 펼친 학이 되고, 종이 한 장이 꽃이 되고, 또 배가 되고, 심지어 로봇이 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 누가 더 빨리 종이비행기를 멀리 날리는지 시합을 했고, 또 어떤 날은 똑같은 색종이로 서로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대결장이 되기도 했다.
미술 수업이 아니더라도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종이 한 장이면 어디서든 놀 수 있었던 그 시절. ‘색종이’는 단순한 학습 도구를 넘어 우리들의 놀이터이자, 창의력의 장이었다.
2. 색종이함, 친구와 나를 이어준 매개체
색종이함은 나만의 보물창고였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사각 플라스틱 상자였지만, 속에는 반짝이 종이, 무지개 종이, 도트 무늬 종이 등 다양한 ‘희귀템’들이 가득했다. 그 시절 색종이함의 종류와 구성은 아이들 사이에서 은근한 자존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야, 너 그 금색 종이 어제도 썼잖아. 나 하나만 줄래?”
“응, 대신 빨간색 반짝이랑 바꾸자.”
이런 대화가 오가던 순간들 속엔 우정과 거래의 감정이 함께 있었다. 서로의 색종이를 나누며, 필요한 색을 빌려주거나 희귀한 무늬를 자랑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색종이함에는 뒷면에 종이접기 설명서가 들어있어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도형을 연구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종이 한 장을 두고 나누는 협동과 경쟁,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우정은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종이들이 아이들 사이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중요한 매개였던 것이다.
3. ‘색종이 숙제’가 준 두근거림과 압박감
미술 시간은 언제나 즐겁지만, 색종이를 주제로 한 ‘숙제’가 주어질 때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음 시간까지 가족을 주제로 색종이 콜라주를 만들어오세요.”
이런 숙제가 주어지면 온 집안이 뒤집혔다.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과정은 단순해 보여도 의외로 손이 많이 갔다. 배경을 어떻게 꾸밀지, 인물은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색종이를 오리다가 다 써버린 색이 생기면, 동네 문구점으로 달려가 부족한 색을 찾아 사 오기도 했다. 친구들과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너는 배경에 파란색 써? 나도 그거 해볼까?”라며 협업 아닌 협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결과물이 제출되는 날, 교실 벽에는 각양각색의 색종이 작품이 전시되었고, 내 작품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반응에 마음이 붕 떠오르곤 했다. 마치 작가가 된 것 같은 자부심을 안겨준 ‘색종이 숙제’는 창의력 이상의 가치를 우리에게 선물해 줬다.
4. 미술 수업은 끝났지만, 색종이는 남았다
시간이 흘러 미술 수업도 줄어들고, 색종이함을 펼칠 기회도 줄었다. 하지만 그 추억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문구점에서 색종이 코너를 지나치다 보면, 그 시절 감정이 문득 되살아나곤 한다. 그리 크지 않은 사각 상자 하나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졌던 작은 세계는 우리가 자라나는 동안 무언의 영향을 주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색종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쓰임새는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된 시대 속에서도, 손끝으로 접고 자르며 배우는 아날로그 감성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 시절의 색종이함은 단순한 학용품이 아니라, 우리들의 창의성과 감수성, 그리고 친구들과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 보물 상자였다.
5. 맺음말: 종이 한 장이 만들어낸 마법
색종이함 하나로 미술 시간 1시간이 금세 지나가던 시절, 우리는 창의성과 놀이, 협동심을 함께 배웠다.
종이 한 장에 담긴 무한한 상상력은 지금도 우리 삶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저 단순한 추억이라고 넘기기엔, 색종이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소중했던 교실 속 친구였다.
혹시 집에 남아 있는 색종이가 있다면, 오늘 한 장 꺼내어 학 하나를 접어보는 건 어떨까?
그 순간, 다시 그 시절의 미술 시간이 손끝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