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는 불교가 국교로 자리 잡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시기였지만, 동시에 미신과 주술, 그리고 ‘마녀사냥’이라 부를 수 있는 행위들이 벌어졌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미신을 넘어서 특정 인물을 재앙의 원인으로 몰고, 극단적인 처벌을 내리는 일도 빈번했죠. 오늘은 고려 시대의 미신과 주술, 그리고 ‘마녀사냥’이라 불리는 현상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는지, 그 배경과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불교의 그늘 속에 퍼진 무속 신앙과 주술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왕실과 귀족 계층을 중심으로 불교가 크게 번성했습니다. 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죠. 그러나 공식 종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에는 여전히 무속 신앙과 다양한 주술적 행위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질병, 기근, 천재지변 등의 이유를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했습니다. 과학적인 의학 지식이나 자연 이해가 부족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불행을 ‘누군가의 저주’, ‘귀신의 장난’, 혹은 ‘하늘의 노여움’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당, 주술사, 도참가들이 활동할 여지가 많았고, 그들의 말이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특정 인물을 마녀나 주술사로 몰아세우고 처벌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위기나 정치적 혼란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2. ‘재앙의 주범’을 찾아라 – 고려판 마녀사냥의 실체
고려 시대에는 하늘의 징조(천문 현상), 자연재해, 역병 등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여성이었습니다. 특히 궁궐 내 궁인(후궁, 궁녀)이나 왕의 주변 여성이 불행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숙종 대에 벌어진 주술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왕실에서는 왕비의 자리를 두고 여러 여인들 간의 암투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한 여인이 태아를 유산시키기 위해 주술을 사용했다는 혐의로 고발되었죠. 그녀는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결국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문제는 이 혐의가 확실한 증거나 물증이 아닌 ‘꿈에서 본 징조’나 ‘누군가의 예언’이라는 불확실한 정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미신이나 주술을 이용해 해를 끼쳤다고 몰아붙이는 방식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마녀사냥’입니다. 특히 권력 다툼이나 정치적 제거가 목적일 때, 주술은 좋은 구실이 되었죠.
3. 왕도 믿은 점과 도참 – 미신은 권력의 도구
고려의 왕들조차도 미신과 주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도참사상입니다. 이는 ‘이 지역에 새로운 왕조가 탄생할 것이다’ 혹은 ‘어떤 성을 가진 자가 왕이 될 것이다’ 같은 예언적 내용을 담은 사상으로, 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고 반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근거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묘청의 난도 이러한 도참 신앙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묘청은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믿고, 서경(지금의 평양)이 새로운 천하의 중심이 될 것이라 주장하며 난을 일으켰죠. 이처럼 미신과 예언은 단순한 신앙 차원을 넘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이 났을 때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점을 치는 일도 왕실에서 흔했습니다. 정통 유학자들이 이를 비판했지만, 신앙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죠. 오히려 위기가 클수록 사람들은 더 강하게 초자연적 존재에 의지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4. 주술의 희생양이 된 여성들
고려 시대 마녀사냥의 주요 희생양은 대체로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성별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약자가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궁중에서 왕의 총애를 받는 여성은 다른 세력의 질투와 견제를 받기 쉬웠고, 이러한 정치적 암투 속에서 ‘주술을 썼다’는 혐의는 최고의 무기였습니다. 한 예로, 고려 말기에는 한 여인이 자신을 싫어하는 다른 여인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무당에게 주술을 의뢰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일이 있습니다. 주술의 유무보다, 누가 고발했느냐가 중요했던 시대였죠.
또한, 농촌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확이 좋지 않거나, 마을에 질병이 돌면 노파나 혼자 사는 여성, 평소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마을의 ‘주술사’로 몰려 곤욕을 치르곤 했습니다. 이는 유럽의 마녀사냥과 매우 유사한 양상입니다.
5.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마녀사냥’의 교훈
고려 시대의 ‘마녀사냥’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루머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의해 개인이 집단적으로 공격받는 일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SNS나 언론의 보도를 통해 혐의를 받은 사람은 이미 사회적 처벌을 받고, 나중에 무죄로 밝혀져도 그 피해는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의 ‘주술과 미신’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옥죄었는지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얼마나 더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6. 마무리하며
고려 시대의 역사 속에는 눈부신 문화와 발전뿐 아니라, 우리가 되짚어봐야 할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합니다. 미신과 주술,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억울한 희생들. ‘마녀사냥’은 더 이상 중세의 일이 아닙니다. 타인의 말이나 근거 없는 정보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사고로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지금, 고려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