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를 초등학교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책상 서랍을 열면 ‘향기 지우개’가 한두 개쯤은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건 ‘누가 더 희귀한 지우개를 가지고 있느냐’였고, 수업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기다려졌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 향기 지우개는 단순히 글씨를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추억이고 놀이였고 교환의 수단이었다. 오늘은 그 시절 향기 지우개의 세계를 ‘종류별’로 나눠 정리하며, 그때의 감성을 함께 떠올려본다.
1. 과일 향 지우개 – 입에 넣고 싶었던 유혹
향기 지우개의 대표주자라면 단연 과일 향 지우개다. 사과, 포도, 바나나, 딸기, 수박, 멜론 등등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향은 실제 과일보다 더 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지우개들은 향도 향이지만, 그 색감과 포장지까지 너무 귀여워서 쓰기가 아까웠다. 심지어 몇몇 아이들은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모으기만 했고, 어떤 친구는 연필통을 열면 한가득 들어있었다.
특히 일본제 수입 지우개는 향이 오래가고 디자인도 뛰어나 ‘프리미엄 아이템’으로 취급받았다. 쉬는 시간마다 교환하고, 같은 과일 향이라도 회사나 디자인이 다르면 다른 지우개로 여겨졌다.
2. 음식 모양 지우개 – 쓰지 않고 갖고 노는 용도
햄버거, 감자튀김,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 실제 음식처럼 생긴 지우개는 지우개라기보다는 장난감에 가까웠다. 작은 부품을 조립해 하나의 음식을 완성해야 했기에, 친구들과 서로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놀기도 했다.
이런 지우개는 향기까지 입혀져 있어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했다. 심지어 몇몇 아이들은 “진짜 먹는 거 아냐?”라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사실적으로 생긴 지우개를 자랑스럽게 꺼내 놓기도 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이런 음식 지우개가 한 세트로 들어 있는 상품도 있었고, ‘세트 구성’이 남들과 다르면 더 희귀한 것으로 여겨졌다.
3. 동물 & 캐릭터 지우개 – 귀여움의 끝판왕
토끼, 곰, 고양이 같은 동물 모양 지우개는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유행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 지우개도 많았는데, ‘세일러문’, ‘짱구’, ‘도라에몽’ 등은 지우개로까지 확장돼 있었다.
이 지우개들은 향은 덤이고, 귀여움과 희소성으로 주목받았다. 대부분 지우개로 쓰기보다는 필통 속 '장식' 역할을 했고, 일부는 아예 작은 비닐팩에 넣어 ‘미개봉’ 상태로 간직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에는 ‘지우개 바닥에 글자가 써쓰여 있으면 좋은 지우개다’는 속설도 있어서, 아무 의미 없는 글자가 쓰여 있어도 괜히 친구에게 자랑하곤 했다.
4. 기능성 지우개 – 진짜 잘 지워지는 건 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지우개는 진짜 잘 지워졌어”라고 기억하는 아이템도 있다. 향기는 물론이고 실제 필기체 지우는 기능도 뛰어난 지우개가 일부 존재했다.
대표적인 예가 '미쯔비시'나 '펜텔'처럼 일본 브랜드에서 나온 고급 지우개다. 향기가 나는 동시에 부드럽게 지워졌고, 손에 묻는 가루도 적어 인기가 높았다. 디자인은 투박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주로 애용했다.
반대로 향기만 강하고 전혀 지워지지 않는 ‘페이크 지우개’도 많았다. 쓰면 더 지저분해져서 아예 책상 위 장식용으로만 쓰는 일이 허다했다.
5. 지우개 놀이 – 단순한 문구를 넘은 문화
향기 지우개는 단순한 학용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놀이였고 문화였다. 책상 위에 지우개를 올려 놓고 서로 밀어 상대방 지우개를 떨어뜨리는 ‘지우개 딱지놀이’는 전국적인 유행이었다.
또는 자신의 향기 지우개 컬렉션을 꺼내 친구들과 비교하거나 교환하며 우정을 쌓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다이소 박스에 종류별로 정리해 오기도 했고, 드물게는 종이로 ‘지우개 도감’을 만들어 설명을 붙여놓은 아이도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시절 우리에게 지우개는 단순히 문구류가 아니라, 추억 그 자체였던 것이다.
6. 마치며: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향기 지우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요즘 문방구에서는 예전처럼 향기 지우개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실용적인 제품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이나 빈티지 마켓에서는 여전히 옛날 향기 지우개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
당신의 책상 서랍 어딘가에도, 아직 향기가 남아 있는 그 지우개가 남아있지 않은가?
그 시절의 향을 다시 떠올리며,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