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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복에 덧신’의 조합, 패션인가 규율인가

by 행복한달조 2025. 6. 6.

“체육복에 하얀 덧신, 지금 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때는 너무나 익숙한 조합이었죠. 그 시절의 운동장, 줄 맞춰 선 발끝에서부터 추억이 시작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마음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풍경입니다.”

 

‘체육복에 덧신’의 조합, 패션인가 규율인가
체육복

 

1. 체육복과 덧신, 그 묘한 조합의 시작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학교의 아침 풍경을 떠올리면, 운동장에 체육복을 입고 줄 맞춰 서 있는 학생들, 그리고 발에는 어김없이 하얀 덧신(실내화)이 함께하는 모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 보면 다소 어색한 조합처럼 보이지만, 그 시절엔 매우 ‘당연한’ 일상이었죠.

체육복은 학교에서 정해준 통일된 복장으로, 주로 하늘색이나 감색 상하 세트, 학교 로고가 가슴팍이나 바지 옆 라인에 새겨진 디자인이 많았습니다. 반면, 덧신은 체육관 또는 실내 체육 수업용 실내화로 지정된 신발이었죠. 문제는 이 덧신을 체육 수업뿐 아니라 학교 생활 전반에 걸쳐 착용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하거나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도 덧신 착용은 필수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대개 아침부터 덧신을 신고 등교하거나, 교문 앞에서 교복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덧신으로 바꿔 신는 등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 조합은 단지 학교의 규율을 따르는 행위였을까요? 아니면 시대가 만든 나름의 ‘학생 패션’이었을까요?

 

2. 덧신의 정체: 실내화, 단정함, 그리고 ‘규율’의 상징

덧신, 또는 실내화는 단순한 신발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학교에서는 덧신을 통해 학생의 청결 유지, 질서, 통일성, 단정함을 강조했습니다. 흔히 하얀색이 기본이었고, 학생 이름을 앞코에 써야 하며, 일부 학교는 학년색별로 라인 표시를 달리하여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덧신은 체육 수업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재질과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운동에 적합하지 않은 얇은 고무창과 통기성 없는 인조 가죽 소재로 인해 무더운 여름엔 땀이 차고, 겨울엔 발이 시리던 기억이 많은 학생들에게 남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덧신 착용 여부를 꼼꼼히 확인했으며, 운동화를 신고 온 학생은 복장불량으로 지적받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 교칙에 따라 덧신 미착용 시 벌점, 벌청소 등의 처벌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체육복에 덧신이라는 조합은 패션이 아니라 강력한 규율 교육의 일환이자, 학생 개개인을 ‘관리’하는 수단이었습니다.

 

3. 덧신이 만들어낸 교내 풍경: 청소, 세탁, 그리고 단체성

체육복과 덧신이 어우러진 그 시절의 학교생활은, 오늘날 학교문화와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실내화 세탁의 의무화였습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매주 금요일이나 월말마다 덧신을 가져가서 집에서 세탁해 와야 했으며, 냄새나 누렇게 변색된 덧신은 ‘불량 실내화’로 분류되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또, 운동장이나 교실 안에서 덧신을 신은 채 뛰어다니던 친구들이 넘어지면서 덧신이 벗겨져 날아가는 장면, 복도에서 덧신을 슬리퍼처럼 끌며 걷다가 감점 지적을 받는 장면, 학급 임원이 일일이 덧신 착용 상태를 확인하던 풍경까지, 모두 그 시절을 상징하는 장면들입니다.

이러한 관리 시스템은 학생들이 자율성을 갖기보다는, 획일성과 질서, 공동체 속에서 나를 맞추는 것에 익숙해지는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덧신은 단순히 신발이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집단 안에서의 나’를 상징하는 도구였던 셈입니다.

 

4. 덧신을 개성 있게 바꿔보려던 작은 저항들

물론 모든 학생이 이 획일적인 조합을 순응하며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도 덧신을 ‘조금 더 멋지게’ 보이게 하려는 작은 패션의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덧신 앞코에 예쁘게 이름을 쓰는 사람

무지 덧신 대신 무늬가 들어간 덧신을 몰래 사서 신고 오는 친구

덧신 끈을 컬러 고무줄로 바꾸는 아이디어

발목 양말을 접어 신고, 덧신을 살짝 느슨하게 연출하기

이처럼 체육복과 덧신이라는 딱딱한 조합 속에서도 학생들은 개성과 자유를 표현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행위는 종종 선도부의 단속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학창 시절의 ‘작은 반항’이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였습니다.

 

5. 오늘날에는 사라진 조합, 그러나 기억은 선명하다

최근 학교에서는 덧신 문화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기능성 운동화 착용을 허용하거나, 교실 내부 슬리퍼만 별도 지정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변경하면서, 그 옛날 체육복+덧신 조합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학생들에겐 이 조합은 여전히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창들과 오랜만에 만나 "그때 그 덧신 기억나?"라는 말을 꺼내면, 단번에 웃음과 함께 수많은 에피소드가 쏟아지곤 합니다.

지금 보면 다소 불합리하고 답답해 보일 수 있는 복장 규정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규율과 개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성장해왔던 시절의 우리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6. 마무리하며: 단순한 복장 그 이상이었던 '체육복+덧신'

‘체육복에 덧신’이라는 조합은 단지 운동시간의 복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대가 요구한 질서와 학생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그 속에서 작게나마 자신을 표현하려던 감성이 뒤섞인 상징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의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면, 유독 뽀얗게 빛나던 덧신과 다소 헐렁한 체육복 차림의 우리가 거기 서 있죠. 그 모습이 부끄럽기보다, 어쩐지 풋풋하고 따뜻한 이유는 아마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살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