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볼 수 없지만 시대에 맞춰 교련복을 입고 수업을 받은 시대가 있습니다. 이제는 추억이 된 교련복, 오늘 이 글에서는 운동장에서 보인 교련복을 추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군복 같던 교련복, 왜 그걸 입고 체육을 했을까?
1970~8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에게 ‘교련복’은 단순한 교복이나 체육복이 아닌, 일종의 의무적 상징이자 국가적 이념 교육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남학생에게는 군사훈련의 일환인 ‘교련’ 수업이 필수였고, 이 수업을 위해 학교는 군복과 비슷한 교련복을 지급했습니다.
당시 교련복은 군인처럼 카키색 계열의 상·하의로 구성되어 있었고, 왼쪽 가슴에는 학교 이름이나 학년 표시가 붙어 있었습니다. 모자, 군화, 심지어 이름표까지 부착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겨울용 교련복은 두꺼운 야전 점퍼 형태로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이 복장을 입고 진행된 수업은 단순한 체육이 아니라, 열외 없는 제식훈련, 제자리에서의 군기 다지기, 돌격훈련, 진지 구축법, 응급처치법 등 지금 체육 시간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등학생들이 도심 한복판 운동장에서 총검술 시범을 하고 있었던 장면 자체가 충격적일 수 있죠.
그 시절에는 교련복을 입는 것이 ‘국민의 의무’, ‘학생의 자세’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아무런 이의 없이 따라야만 했습니다. 특히 남학생들은 고3이 되면 실탄 없는 총기인 ‘목총’을 지급받아 진짜처럼 훈련을 받았고, 이것이 곧 군입대 전 예행연습처럼 여겨졌습니다.
2. 더웠던 여름에도 장갑까지 착용, 지금 보면 고역
오늘날 체육 수업에서는 활동성을 높이기 위한 반팔 티셔츠, 트레이닝복, 기능성 운동복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 교련 수업에서는 통풍이 잘 되지 않는 교련복을 사계절 내내 착용해야 했습니다.
특히 여름에는 긴팔 상의와 모자, 가죽장갑까지 풀세트로 입는 게 원칙이었으며,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은 매우 고단해 보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군기를 강조한다는 명분으로 정해진 자세로 일정 시간 서 있기 훈련을 시키거나, 정렬 상태를 확인하느라 점검에 30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죠.
또, 교련복을 입을 때는 단정하게 다려져 있어야 했고, 상의는 바지 안에 집어넣어야 하며, 단추를 모두 잠그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복장 점검이 철저해서 양말이 하얀색인지, 운동화에 줄무늬가 있는지까지 확인하는 선생님도 많았고, 복장불량으로 운동장에서 벌서는 학생들도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3. 체육이 아닌 준 군사훈련, 몸보다 정신 강조
‘교련’은 기본적으로 군사교육을 체험하게 하는 목적에서 도입된 과목이었습니다. 이는 1969년 박정희 정권 시절 국가안보 교육의 일환으로 중등교육에 도입된 것으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교련 수업은 체육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신 교육의 성격이 강했고, 교사는 ‘교련 전담 교사’로 지정된 예비역 군인 출신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마치 실제 부대처럼 수업을 진행했고, 학생들에게 “국가, 민족, 안보”라는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주입하곤 했죠.
당시 학생들은 “교련 시간은 군대 미리 가는 시간”이라고 말하곤 했으며, 한 줄 정렬, 구호 제창, 정지・좌향・우향・뒤로 돌아 등의 동작을 반복하며, 체력과 정신력을 동시에 단련했습니다.
오늘날 이런 방식은 학생 인권의 측면에서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체육 수업과는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시간표상에는 체육과 묶여 동일하게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4. 여성은 교련 수업이 없었을까?
‘교련’ 과목은 남학생에겐 필수, 여학생에겐 선택 혹은 대체과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학생은 이 교련 수업을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정이나 보건, 예체능 과목으로 대체되었고, 교련복 또한 여성에게는 필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여학생도 교련복을 착용하도록 규정했으며, ‘안보 교육’ 차원에서 기초 제식 훈련을 시키거나, 응급 처치 훈련, 화생방 이론 교육 등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남학생들과 같은 훈련 강도는 아니었지만, 국가 주도의 이념 교육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한 맥락에서 운영된 셈입니다.
5. 1990년대 이후 사라진 교련과 교련복
1990년대 중반, 민주화와 학생 인권 의식의 성장, 군사문화의 잔재 청산이라는 흐름 속에서 ‘교련’ 과목은 폐지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교련복 역시 점차 사라졌고, 이후의 세대는 해당 복장이나 수업을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지만, 당시를 겪은 이들에겐 매주 특정 요일마다 교련복으로 등교하고, 체육장이 아닌 군사 훈련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수업받던 경험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 교련복은 단순한 운동복이 아니라, 국가가 학교 교육을 통해 개인의 사상과 체력을 동시에 단련시키고자 했던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6. 마무리하며: “그땐 그랬지”가 아닌, 되돌아볼 시절
‘교련복’을 단순히 복고풍의 유니폼이나 추억거리로만 보긴 어렵습니다. 그것은 분명 특정 시대의 교육과 사회 분위기, 그리고 국가 이념이 교실 안까지 깊이 스며들었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면 다소 불편하고 과도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들을 지나온 세대들은 서로 “그땐 그랬지”라는 말 한마디에 수많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추억을 가졌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고등학교 시절, 진지하게 제식 훈련을 받고, 목총을 들고 행진했던 기억, 여름날 땀범벅이 되어도 교련복을 벗을 수 없었던 날들을 떠올리고 있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책장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교련복 한 벌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교실 풍경을 조용히 다시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